조금(많이) 늦은 제11회 디아스포라 영화제 후기

2023. 6. 21. 13:51영화제 리뷰 및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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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에 갔다 온 지 한 달이 지나서야 후기를 작성하게 되네요.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후기는 무조건 쓰겠다고 예전에 마음을 먹은지라 이제라도 쓰게 되는군요. 저는 사실 디아스포라 영화제의 존재 유무를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갈 생각도 없었구요. 근데 마침 영화제 진행 기간에 개최지인 인천에 갈 일이 생기기도 했고, 막상 상영작 리스트를 확인해 보니 흥미가 가는 작품들이 몇 개 있어서 간단하게 즐기고 왔습니다. 애관극장도 처음 가봤는데, 한국에 몇 안 남은 역사적인 극장이죠. 비록 시설은 많이 노후된 상태였지만, 한국 영화관의 역사를 체험하는 느낌이 나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총 세 편의 작품을 감상했는데, 간단하게 리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킴스 비디오

이번 디아스포라 영화제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해준 작품이기도 하고, 제일 기대가 되기도 했던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인데, 저는 사실 다큐멘터리를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닙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픽션이 아닌 영상물에는 흥미가 상대적으로 덜 가기 때문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구미가 당긴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바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월에 개최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영화였다는 점도 한몫했습니다. 영화는 90년대에 미국으로 넘어가 '킴스 비디오'라는 비디오 대여점 사업을 하여 미국 시네필들에게 전설이 된 한국인인 김용만 씨와, 방치된 킴스 비디오의 DVD들을 되찾고자 모험을 떠나는 감독의 이야기를 중점으로 진행됩니다. 이러한 스토리만으로도 한국 시네필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매우 충분하죠.

 

영화는 과거 킴스 비디오에서 영화를 보며 자란 향수를 그리워하는 감독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됩니다. 방치된 DVD를 찾으려고 이탈리아까지 넘어가고, 수소문 끝에 전설 속으로 사라진 김용만 씨와 대면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가장 놀라운 점은, 바로 감독의 영화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합니다. 영화를 사랑한다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직 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로 이다지도 막연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실행력을 갖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감독의 삶에 영화란 무엇인지는 이 영화 하나로도 충분히 설명이 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사랑스러운 영화에서도 걸리는 지점이 존재하는데, 바로 영화에 대한 순정과 윤리 사이의 괴리감입니다. 감독의 DVD를 구제하고자 하는 열정은 너무나도 잘 알겠지만, 그러한 열정이 윤리적 잣대를 마음대로 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감독의 계획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비윤리적인 몇몇 행위는, 끝내 영화에 대한 순수한 욕망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찝찝함을 남깁니다. 그렇기에 저는 감독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지지하지만, 감독이 영화 속에서 벌이는 모든 행위만큼은 쉽사리 동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평점: ★★★☆

 

 

 

2. 갓랜드

개인적으로 이번 디아스포라 영화제의 최대 수확이라고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이번 영화제의 주 목적은 '킴스 비디오'를 보기 위한 것이었고, '갓랜드'는 그냥 간 김에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선택한 영화입니다. 영화를 예매하기 직전까지는 이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고, 예매를 한 뒤 찾아보니 작년 칸 영화제 경쟁작에 오른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 하나만을 습득한 채, 아무 생각 없이 영화관에 입장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입장하고 대략 5분 뒤, 수녀님 두 분이 입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종교 영화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게 되었고, 약간의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종교 영화를 선호하는 편이 아니기도 했고, 혹여나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강요하는 방식의 영화라면 약간의 거부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걱정은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모두 휘발되었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을 보는 순간, 저는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속으로 '됐다!'라고 외쳤습니다.

 

'갓랜드'를 보며 처음 든 생각은, 바로 리산드로 알론소 감독 작품의 '도원경'이 겹쳐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진기로 찍어낸 듯한 화면의 비율, 아름다운 자연의 광활함을 담아낸 미장센, 한 남자의 끝없는 고난과 역경을 다룬 흐릿한 서사의 모더니즘까지. 영화 자체를 잘 만들었다고도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제 취향에 완전히 부합하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신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아이슬란드 섬에 교회를 짓고 신의 뜻을 전파하기 위해 떠나는 신부님을 중점으로 진행됩니다. 편하게 이동 수단을 통해 섬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신부님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가는 모든 과정에서 보여지는 긍휼한 자연을 사진기로 담아내기 위해 두 다리로 걸어가기를 택합니다. 그러나 신부님의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과는 다르게, 신은 결코 신부님의 순탄한 모험을 위해 축복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신부님은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고, 결국 신을 통한 내세로부터의 구원이 아닌 인간을 통한 현재의 구원이라는 욕망을 바라게 됩니다. 인간의 필연적 염세에 대해 말하는 영화의 자세에 탄복하게 되고, 아이슬란드의 모든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내는 롱 숏에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됩니다. 모던 슬로우 시네마를 지향하는 작품이니만큼 취향에 따라 의견이 확고히 갈릴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 굳게 확신하는 것은 무조건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라는 사실입니다.

 

평점: ★★★

 

 

 

3. 노스탤지아

이 작품 역시, 예매 후 정보를 찾아보고 난 뒤에야 작년 칸 영화제 경쟁 후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럼 이번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작년 칸 영화제 경쟁 진출작만 두 편을 본 셈이 되는 거죠. 기대치가 가장 적은 작품이었지만, 그래도 칸 진출작이라는 사실과 국내 개봉 미정작을 미리 본다는 것이 좋아 끝까지 고민하다 보게 되었습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한 남자의 향수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걸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향수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스며들 수 있는지에 대한 침투성과, 자신은 추억이라고 생각했던 향수가 타인에게는 잊을 수 없는 끔찍한 기억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향수가 가진 양가적인 본질에 대해 말합니다.

 

과거의 강렬했던 경험은, 어느 형태로든지 결국 향수로써 우리의 곁에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향수라는 형태의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한히 바뀔 수 있는 무형이지만, 인간은 향수의 그러한 맹점을 망각하고 과거의 기억을 스스로 왜곡시키는 패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그러한 변질된 향수의 기억에 젖어 타인과의 과거의 어긋난 지점을 다시 맞추어보려 노력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기억을 품고 살아가던 과거의 지인은 그 기억을 향수가 아닌 악몽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나 자신만의 운명은 스스로의 손 또는 타인의 도움으로 구원받을 수 있겠지만,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 공유된 삶의 운명이라면 본인 하나만의 만족으로는 절대로 평탄한 구원을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향수에 대한 영화의 신선한 접근만큼은, 저에게 상당히 흥미로운 사색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의 연출이 무난함을 벗어나지 못해, 소재 이외의 탁월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쉽네요. 화면비와 극의 채도의 변환을 활용한 플래시백이 그나마 영화의 고루함을 덜어주었다고 생각됩니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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