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의 잔해와 교훈 - 시로 게라 <뱀의 포옹>

2022. 11. 11. 12:03장문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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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로 게라 감독의 '뱀의 포옹'은 인간들의 욕심으로 벌어진 식민주의와 그에 따른 원주민들의 고통 그리고 그러한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우리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독창적이고 흥미롭게 풀어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영화를 매우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흥미로운 시각으로 감상하였다.

 

일단 위에 서술하였던 영화의 주제를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아마존의 정글이라는 매혹적인 자연을 미장센으로 흡수하여 풀어낸다는 점이 나를 매혹시켰고, 특히나 영화 배경의 주가 되는 정글과 특정 숏들에서는 내 인생 최고의 영화중 한 편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열대병'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훑는 모든 정글의 공간을 고무 전쟁으로 인한 콜롬비아의 침략이 만든 식민주의의 아픔과 지켜져야 할 고대의 역사가 공존하는 특이 공간으로 작용되는 것이 매우 신비하게 다가왔다. 그렇기에 오프닝에서부터 이 영화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고, 더욱 더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내 생각을 글로 풀어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오프닝은 아마존에서 원주민의 역사에 대해 연구를 하다 불치병에 걸린 '테오도르'와 한때는 원주민이었지만 지금은 백인의 이로운 면을 받아들이고 그의 조수가 된 '만두사'가 조그마한 나룻배를 타고 원주민인 '카라마카테'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카라마카테는 백인들에 의해 자신의 민족들이 몰살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혼자 살아남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나룻배에 타고 있는 백인인 테오도르를 보자마자 경계 태세를 갖추며 쫓아내기에 급급했다. 이러한 카라마카테의 행동에서는 현대에 살고 있는 편견적인 인간들의 태도가 겹쳐 보인다. 당장 한국 사람들만 봐도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묻어있는 과거 때문에 아직도 모든 일본인들을 폄하하는 태도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것은 명백한 일본의 잘못이고, 한국은 사과를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과거의 일본의 잘못 때문에 현재에 살고 있는 모든 일본인들이 일본제국주의의 사상을 가진 보수적이고 위험한 존재인 것은 아니다. 모든 일본인들을 그러한 시각으로 본다면 그것은 과거의 역사가 심어놓은 편견의 시선이다. 하지만 나도 같은 한국인으로서 그러한 한국인들의 분노에 가득 찬 편견을 이해한다. 오히려 나의 마음 속에도 일본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한국인의 한(恨)이 서려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카라마카테의 존재는 영화에서 매우 복잡하면서도 중요한 존재로서 작용한다.

백인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분노 때문에 생긴 편견을 깨긴 쉽지 않겠지만, 테오도르와 만두사는 그런 카라마카테를 설득시켜 그의 도움을 통해 테오도르의 목숨을 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카라마카테에게 전설로만 전해지던 약초인 '야크루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도와달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자신이 혐오하는 백인을 도와줄 생각이 없다면서 매몰차게 거절하지만, 아직 살아남은 소수의 카라마카테와 같은 민족을 찾아주겠다는 제안에 결국 동맹을 맺는다.

 

그렇게 그들의 여정은 시작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카라마카테는 여정을 같이 하면서 나눈 대화를 통해 테오도르와 백인에 대한 편견이 조금씩 벗겨졌다. 그리고 자신의 꿈에서 본 그림이 테오도르의 공책에도 그려져 있는 점을 통해 테오도르는 특별한 존재이고 자신은 그를 지키라는 명을 신으로부터 하달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테오도르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고 아마존에서 습득한 지식과 물질적인 증거들을 고향인 독일에 가져가 사람들에게 증명시키고 싶어하는 욕망에 물들어있다.

 

하지만 카라마카테가 테오도르에 대한 편견이 벗겨진 것처럼, 테오도르도 계속되는 여정을 통해 서서히 욕망을 내려놓고 삶의 진리에 깨닫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편견과 삶의 진리를 깨닫는 여정을 계속해서 떠났지만, 그 사이에서도 수난은 계속하여 그들을 시험한다. 그들은 식민주의의 불똥이 탄생시킨 이단자들의 마을을 발견한다. 고무 전쟁으로 인하여 고아가 된 아이들을 세뇌시켜 자신만의 마을을 만들고 그곳에서 마치 신처럼 군림하는 백인을 발견한다.

 

전쟁은 이루고 싶거나 갖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되는 어리석은 행위이고 그 행위는 양쪽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다. 그리고 그러한 전쟁에서 튀긴 불똥은 영화에 나오는 이단과 같이 또다른 고통만을 수반한다. 결국 야크루나를 찾고자 하는 여정에서 식민주의의 참상만을 계속해서 마주한 테오도르는 불치병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죽음에 가까워지자 그동안의 여정에서 깨달았던 진리를 모두 부정하고 태초의 욕망만이 존재하는 인간상으로 귀결되고 만다. 그러한 테오도르의 모습을 본 카라마카테는 백인에 대한 편견이 재생성되고, 결국엔 힘들게 찾은 야크루나를 죽어가는 테오도르의 눈앞에서 불에 태워버리고 만다.

앞서 서술하였듯이 이 영화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넘나든다. 테오도르의 실패한 여정을 이어가기 위한 몇 십년 뒤의 또다른 모험가의 여정을 영화는 비춘다. 모험가 '에반'은 테오도르가 과거에 작성하였던 책을 토대로 야크루나를 찾기 위해 아그가 모험하였던 아마존에 발을 내민다. 그리고 늙어버린 카라마카테를 마주한다.

 

그렇게 모험가는 다르지만 과거의 실패를 바로잡을 수 있는 여정이 카라마카테에게 주어진다. 에반도 테오도르와 같이 지식과 물질적인 증거에 집착하고 그것이 세상을 돌아가게 할 원동력이라 믿는 사내였다. 하지만 카라마카테는 테오도르에게 했던 것처럼 그를 적대시하지 않고 그저 그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하여 노력한다. 영화에서는 그가 기억을 잃어서 에반을 도와줄 수 없다고 나와있지만, 그가 진짜로 기억을 잃은 것일까?

 

나의 생각에는 그는 과거에 하였던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반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연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에반은 서서히 집착에서 벗어나 믿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난 에반은 스스로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야크루나의 위치를 스스로 찾게 된다. 하지만 야크루나를 마주한 에반은 인간 내면의 욕망이 올라와 카라마카테를 칼로 위협하고 야크루나를 자신의 고향에 가져가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를 받아들인 카라마카테의 노력 끝에 에반은 이성을 되찾고 끝내 야크루나를 달여 만든 약물을 마시고 신적인 존재인 마스터 카피를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에반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를 지식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믿음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깨닫게 된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에 식민주의의 개입은 한 집단의 역사와 문화를 변질시키는 행동이 된다. 삶의 이치와 깨달음을 얻었어도 그것을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서는 깨닫지 못한 자들을 위한 지식과 물질적인 증거가 있어야만 한다. 지식과 물질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믿음이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결국 무지의 삶으로 귀결되고 만다.

 

자신의 종족을 침범하고 학살한 백인이 미운 것은 당연하나 그러한 점 때문에 세상의 모든 백인이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의 시선이다. 모든 종족들의 문화에는 각자만의 장점이 있고, 그런 장점들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느 세대와 어느 문화에 살고 있든 간에,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를 지식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믿음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지녀야 한다. 카라마카테는 과거의 실패를 통해 배웠고, 에반은 자신의 선조가 하였던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화는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언제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비춘다.

흐르는 정글의 강물을 통해 시공간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연출이 탁월하게 다가온다. 또한 카메라가 훑는 모든 공간은 지켜져야 할 고대의 삶이 담긴 숭고한 자연이자 침범된 식민지의 아픈 과거가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순기능이 좋다. 정글을 담아낸 숏만으로도 충분히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열대병'이 연상되지만 후반부의 재규어가 등장하는 장면까지 보게 된다면 이 영화가 '열대병'에서 예술적 조언을 구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다.

 

21세기에도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마치 하나의 꿈과 같이 황홀하면서도 몽롱한 미장센을 통해 표현하는 감독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말고도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다. 앞으로 시로 게라의 신작은 기대를 넘어선 기쁨에 가득 찬 마음으로 보게 될 것 같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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