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토그래프의 최전선 - 로베르 브레송 <사형수 탈출하다>

2022. 10. 25. 13:26장문 영화 리뷰

728x90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래 내가 가장 좋아하던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는 그의 유작인 '돈'이었다. 돈은 인간들이 창조해낸 물질적인 가치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세상은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인간들은 결국 본인들이 만들어낸 물질에 지배당하는 삶을 살아게 된다는 아이러니와 돈과 인간의 욕망에 대한 상관관계를 그려내는 방식이 내 가치관에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브레송 감독의 타 작품인 '사형수 탈출하다'를 재감상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최고작이 바뀌게 되었다.

 

내가 브레송의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대략 2년 전쯤일 것이다. 2년 전이면 한창 예술영화에 입문을 할 시기이다. 안드레이 타르코스프키의 유명세에 아무 생각 없이 '솔라리스'를 보았다가 호되게 혼나고 오즈 야스지로의 다다미숏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던, 영화를 보는 눈이 한없이 낮던 시절이었다. 그때쯤에 로베르 브레송이라는 감독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사형수 탈출하다'로 그의 세계에 입문하였다. 하지만 앞서 구술했듯이, 저때는 영화를 보는 식견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이 영화를 보고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영화를 보는 식견이 생기고 난 뒤 다시 접한 브레송의 다른 작품들은 그야말로 황홀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대로 즐기지 못하였던 '사형수 탈출하다'를 재감상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보고 싶은 영화가 너무 많고 봤던 영화를 또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1년을 넘는 시간동안 이 영화의 재감상을 미루다가 드디어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동안 재감상을 미룬 내 자신이 미워질 정도로 좋았다. 잡설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부턴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사형수 탈출하다'에 대한 조촐한 감상평을 남겨보겠다.

영화는 프랑스가 독일에게 점령당했던 나치 정권 시기를 배경으로 삼는다. '이 영화는 모두 사실이다. 나는 사실만을 오롯이 담기 위하여 노력했다.' 라는 문구와 함께 영화는 시작한다. 주인공인 퐁텐느는 독일군에게 저항하고 프랑스의 독립을 위하여 행동했다는 이유로 체포당해 감옥으로 끌려가는 차 안에서 탈출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 이 첫 장면에서부터 이 영화는 타 영화들과 확연히 다른 지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기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어색한 배우들의 행동과 탈출하려는 퐁텐느의 얼굴과 손만을 클로즈업하는 매우 건조한 연출이 눈에 띈다. 이것은 평소에 로베르 브레송이 주장하던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실천이다. 꾸며진 배우들의 연기나 연출을 배제하고 오로지 사실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순간 그러한 지점에서 오는 감동을 굳게 믿는 것, 이것이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를 만드는 철학이다. 이것을 알고 그의 영화를 본다면, 분명히 더욱 넓은 시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퐁텐느는 차 안에서의 탈출을 실패하고 결국 감옥에 들어가고 만다. 그리고 그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나레이션이 나온다. 그것은 적자생존을 해야 하는 감옥에서 이방인을 믿는 행위는 위험을 동반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치열한 삶을 통해 얻은 그의 개인주의적 신념을 알아볼 수 있는 문장으로써 작용한다. 하지만 그는 곧 창살 밖으로 보이는 운반자와 옆방의 사형수와 소통을 하면서 타인의 도움을 받는다. 아무리 개인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다 해도,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난관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퐁텐느는 그러한 상황에 직면했기에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이익을 취하지만, 결국 그렇게 얻은 이익은 개인의 탈옥에 대한 행위로 귀결된다. 하지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인 최소한의 자유마저 빼앗긴 상황에서 탈옥은 결국 개인적인 행복의 결과를 산출하기 위한 행동이므로, 또다시 개인주의로 귀결되는 과정은 어찌보면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마음이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똑같은 상황만을 반복하여 보여준다. 탈옥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과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들만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러한 반복적인 씬들을 디졸브를 이용한 컷넘김을 통하여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영화의 반복적인 테마에 운율을 넣어 극을 흥미롭게 변주하는 방식이 탁월하다.

 

동료들과의 대화에서는 탈옥할 용기마저 상실하여 탈옥할 용기가 있으면 차라리 자살을 했겠다는 염세주의자와 감옥에서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신으로부터 내면의 구원을 받겠다는 신앙주의자, 퐁텐느와 같이 자유에 대한 갈망을 부르짖는 사람 등 다양한 인간상을 마주할 수 있다. 타의로 자신의 기본적인 권리인 자유마저 박탈당하고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혔기에 모든 용기를 잃어버리고 죽음만을 기다리는 것은 어찌 보면 저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인간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한 그들이 이해가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삶의 희망을 잃지 않고 자유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퐁텐느와 대비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영화는 10명 중 절망에 빠진 9명을 비추기보단 희망을 잃지 않는 1명을 극의 중심으로 끌고 감으로써, 영화에 끝까지 희망의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다.

 

신을 믿기에 탈옥보단 죽음이 신으로부터 구원받을 진정한 방법이라고 믿는 것은 종교적 관점으로 보면 매우 대단하고 숭고한 행위이지만, 자신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겠다는 퐁텐느의 불굴의 의지 또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숭고함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영화는 어떠한 선택이 잘못됐다는 시각보다는,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그 중 퐁텐느의 선택을 지지하는 방향을 선택하여 삶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낸 것뿐이다.

그렇게 퐁텐느는 탈옥 준비를 마치고 실행이 임박한 상황까지 왔지만, 하필이면 그런 중요한 상황에 자신의 방에 다른 죄수가 들어온다. 그 죄수는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였고, 자신보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자유와 삶의 행복을 누리지 못한 아이였다. 원래 퐁텐느의 신념을 따르자면, 탈옥에서 이방인을 믿는 행위는 곧 위험을 동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아이를 죽이는 것이 합당한 선택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어딘가 퐁텐느와 비슷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만약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면 탈옥을 하여 어머님을 보고 싶다는 말에선 아이에게서 또한 삶에 대한 의지가 보이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퐁텐느는 스스로 신적인 위치에 올라 아이를 구원하기에 이른다.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지만, 자신의 인생을 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타인을 구원하고자 마음먹은 주인공의 결심이 감동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끝내 탈옥을 성공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간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담담히 담아내고 그들은 자욱한 안개 속으로 사라지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모든 부분에서 대단함을 느낄 수 있지만, '사형수 탈출하다'의 가장 높은 지점은 둘의 뒷모습을 담아낸 엔딩이라고 생각한다. 타 탈옥 영화들을 한번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탈옥 영화들은 갖가지 노력 끝에 결국 탈출을 성공한 주인공들은 서로 끌어안으며 눈물을 터트리거나 몇 년 뒤로 훌쩍 넘어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감성적인 결말을 내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영화적인 연출을 전혀 가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그들의 뒷모습만을 내보내는 연출을 통해 끝까지 삶을 포기하기 않고 자유를 갈망한 인간을 예찬하고 스스로 선택한 행동에 대한 결과인만큼 그 뒤의 인생도 그들에게 맡기겠다는 영화의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한다. 그런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브레송은 그가 항상 일관된 태도로 유지하던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마법을 증명해냈고, 이 영화에서 오는 짙은 페이소스는 다른 탈옥 영화들은 감히 꿈꿀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갖가지 카메라와 편집을 통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적은 대사와 미디엄 쇼트 그리고 클로즈업 위주로만 영화를 구성하여 그의 행적을 담아냄으로써, 로베르 브레송 본인이 주장한 시네마토그래피 작법에 충실한 자세를 갖추는 동시에 그러한 작법이 줄 수 있는 최대치의 효율을 뽑아낸 걸작이자 이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삶의 도전자들에게 희망을 북돋아주는 축복 같은 영화이다.

 

평점: ★★★★★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