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희망 끝의 축복 - 에릭 로메르 <겨울 이야기>

2022. 10. 26. 15:05장문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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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번에 CGV에서 열린 에릭 로메르 특별전에서 시간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많은 작품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특별전에서 상영하는 영화들 모두 세상에 나온지 몇십 년이 지난 작품들이기에 집에서 합법적으로 볼 방법은 있지만, 영화는 기본적으로 영화관에서 볼 때 가장 완전하게 즐길 수 있다고 믿는 개인적인 신념이 있기에 최대한 영화관에서 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것도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주말에 4편을 예매하였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겨울 이야기' - '수집가' - '녹색 광선' 순으로 감상을 하는 지옥 같은 스케줄을 짜고 그 뒤의 일은 나중의 나에게 맡기는 안일한 판단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난 결국 '겨울 이야기'에서 졸고 말았다. 그러한 일을 겪고 난 다시 한번 영화를 감상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보다 컨디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여하튼 영화를 보고 졸았다는 사실에 통탄하며 나는 집에 가서 그 과오를 씻고자 바로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겨울 이야기'를 대여하였다.

 

미리 대여를 해놓으면 대여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무조건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만간 다시 본다는 마음을 굳히고 드디어 재감상을 하였다. 그리고 영화관에서 처음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상을 받았다. 이 영화를 다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였다. 사실은 로메르의 사계절 연작에는 그다지 큰 기대가 없었다.

 

보통 그의 최고작으로 많이 뽑는 모드의 집에서 하룻밤,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 녹색 광선, 해변의 폴린 정도만 기대를 하였다. 하지만 저 중 둘은 특별전 리스트에 있지도 않았고, 로메르의 사계절 연작은 딱히 계절 순으로 영화를 볼 필요가 없다 해서 이 영화를 먼저 본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선 사계절 연작의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졌다. 그럼 이제부터 '겨울 이야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보겠다.

'겨울 이야기'는 오프닝부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로메르의 타 작품들과는 다른 연출을 선보인다. 주인공인 펠리시와 그의 남자친구인 샤를르와의 추억을 잔잔한 피아노 선율과 함께 몽타주 기법으로 관객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동안 별다른 기교 없이 단순한 촬영과 편집만을 선보인 로메르의 영화에선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연출을 본다는 것에 약간의 이질감이 들었지만, 그것이 단점으로 오는 부분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로메르의 새로운 부분을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연출 자체도 훌륭했다.)

 

펠리시는 직장을 찾아 타지로 떠난 샤를르에게 자신의 집주소를 알려주고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며 애잔하게 헤어진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집주소를 잘못 알려주었고,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흐르고 만다. 5년 동안 샤를르를 만나지 못한 펠리시는 그동안 다른 남자친구를 만들고 현실을 받아들인 듯 살아가고 있었다. 첫 번째 남자친구인 로익과는 좋은 친구로 남고 싶어하고, 두 번째 남자친구인 막상스와는 샤를르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딸과 같이 느베르에서 미용실을 하며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나름의 계획까지 세워뒀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까지 샤를르를 재회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로익에게는 이별을 통보하며 너를 사랑하는 것과 샤를르를 사랑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며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내뱉는다. 하지만 그 마음이 진심이라 할지라도, 로익의 입장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희망만을 바라보기 위해 현실에 있는 자신을 버리는 행위로 간주될 것이다. 막상스에게도 마음을 정리하고 현실에 집중하겠다고 하고 그와 같이 살게 되었지만, 결국 그의 곁을 떠남으로써 1%의 희망을 위해 99%의 안정된 삶을 스스로 저버리고 만다.

 

다시는 찾지 못할 것 같은 사랑을 포기하고 현실에 순응하는 자세도 상황에 따라서는 필요하겠지만, 그런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사랑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자세에서는 인간의 숭고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막상스를 떠나기 직전 성당에서 마주한 기적 또한 사랑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상스의 곁을 떠난 펠리시는 다시 파리로 돌아가 로익을 만난다. 로익은 다시 돌아온 펠리시와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만, 그녀는 자신의 믿음과 기적을 마주함으로써 더욱 확고해진 신념을 절대 굽히지 않는다. 그렇게 다시 재회한 둘은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란 연극을 보러 간다.

 

연극의 줄거리를 대강 요약해 보자면, 자신의 딸을 잃어버리고 재회하지 못한 채 죽어버린 여왕과 그녀를 그리워하는 왕과 공주는 진심으로 그녀를 그리워한다. 그러자 마법사는 왕비와 똑같이 생긴 석상을 만들어내고, 그 석상에 숨결을 불어넣어 왕비를 다시 살린다. 그렇게 다시 생명을 얻은 왕비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공주와 만나게 된다. 펠리시는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놓인 그들과 그들의 희망이 현실화된 연극을 통하여 다시 한번 기적을 체험한다.

 

연극을 본 뒤에 펠리시와 로익은 왕비가 어떻게 살아났는지에 대해 토론을 한다. 로익은 매우 유식한 철학자이자 가톨릭 신자이다. 하지만 그 기적을 신이 주신 기회라 믿지 않고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이상적으로 풀어나가려고만 하며 가톨릭 신자의 내면에 맞지 않는 모순적인 행동을 보인다. 그에 반해, 무신론자인 펠리시는 끝없는 믿음과 희망을 품어왔고 신에게 그러한 믿음을 보답받았기 때문에 왕비가 부활한 것은 신이 내려주신 기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둘의 의견은 끝내 합의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을 통해 서로의 신념이 대립되는 둘은 이어질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로익의 갖은 노력 끝에도 자신의 신념을 올곧이 지킨 펠리시는 로익과 헤어지고 새해 준비를 하기 위해 장을 보러 버스를 탄다. 그리고 매우 놀랍게도 펠리시가 탄 버스에서 샤를르를 재회하게 된다. 서로 너무 놀랐지만, 샤를르는 곧 반가움에 살갑게 펠리시에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뒤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주소를 잘못 알려줬다는 해명을 하여 둘의 오해가 풀리게 된다. 하지만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 샤를르를 본 펠리시는 그가 결혼을 한 줄 알고 버스에서 내려 도망친다.

 

하지만 샤를르는 그런 그녀를 붙잡고 또다시 한번 오해를 푼다. 그렇게 둘은 두 번의 오해와 해명을 통해 기적처럼 5년 전의 찬란했던 그 날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펠리시가 이 모든 기적을 받을 수 있던 이유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여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다른 이들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파스칼의 내기'를 전재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여기서 파스칼의 내기는 신이 존재하지 않지만 신을 믿을 경우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신이 존재하고 신을 믿으면 옳은 선택을 하게 된 것이고 영원한 행복을 얻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신이 존재하지 않고 신을 믿지 않는다면 얻는 것이 하나도 없으나, 신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신을 믿지 않는다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신을 믿는 것이 이득이라는 논리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신을 믿어보라는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결국 펠리시는 자신의 신념을 믿었고, 그렇기에 신은 그런 그녀에게 기적을 허용한 것이다.

에릭 로메르의 타 작품들에서의 통통 튀는 매력을 배제하고 정제된 느낌을 내포하여 그의 매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러한 방식을 택하였기에 마주할 수 있던 오프닝의 아름다운 몽타주 연출과 황량하면서도 아름다운 겨울의 미장센은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좋은 엔딩은 영화를 좋게 만들어준다는 말처럼, 기적과 낭만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결말은 관객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보는 순간보다 본 뒤의 여운이 훨씬 길게 남을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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