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장에서 본 것들 2

2023. 4. 21. 12:08짧은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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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도 여전히 극장에 들릴 일이 많네요. 제가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부터 예전에는 개봉하지 못하였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영등위의 기준점이 바뀌면서 이제야 한국에 정식으로 개봉하는 영화까지. 바로 저번 포스팅인 '최근 극장에서 본 것들'의 글을 썼을 때처럼, 영화인들에게는 볼 영화가 계속해서 개봉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죠. 물론 그만큼 돈과 시간 그리고 체력은 많이 투자되지만, 애초에 제가 원해서 하는 투자이기 때문에 전혀 억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쁜 마음이 더 크죠. 그럼 이번에도 최근 극장에서 본 작품들에 대해 간단한 단평을 남기는 글을 끄적여보겠습니다.

 

 

 

1. 해피 투게더 리마스터링

현존하는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자, 홍콩 영화계의 영원한 전설로 남을 왕가위 감독의 작품이죠. 이 영화가 재개봉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무조건 영화관에 가서 재감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은 한국에서 수도 없이 재개봉을 했었죠. 그렇게 '화양연화'와 '중경삼림'을 영화관에서 다시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신기한 것은 두 영화 모두 영화관에서 재감상을 하였을 때가 훨씬 좋은 감상을 남겼다는 점입니다. 역시 똑같은 걸작이라도 영화를 접하는 환경에 따라 감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진리를 왕가위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해피 투게더' 역시 재개봉을 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가 재감상을 하였고, 역시나 제 예상대로 집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큰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영화는 아휘와 보영이라는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극을 전개합니다. 두 남자는 서로를 너무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행위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깨져버린 유리잔을 다시 붙인다고 처음의 단단했던 유리잔처럼 완벽하게 복원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 또한 그렇다는 것을 이 영화는 전재합니다. 서로를 잊지 못하여 재결합을 하지만, 결국 또다시 헤어짐을 반복하며 그들이 원하던 처음의 뜨거웠던 사랑은 끝내 마주할 수 없다고 영화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다시 시작하자'라는 말은 전의 행복했던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 이미 한번 깨졌던 사랑이라는 유리잔을 애써 붙여보겠다는 수고스러움이 되고 맙니다. 영화는 그러한 두 남자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플롯에 집중하기보다, 이미지의 강렬함을 통하여 스크린에 황홀하게 펼쳐냅니다. 왕가위 감독의 숱한 걸작들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고 싶은 탁월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점: ★★★

 

 

 

2. 에어

벤 애플렉이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오랜만에 영화계에 돌아왔네요. 개인적으로 저는 배우로서의 벤 애플렉보다 감독으로서의 벤 애플렉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물론 배우로서의 벤 애플렉도 좋아합니다. 그냥 사람이 멋있잖아요. 굳이 훌륭한 연기를 펼치지 않더라도, 벤 애플렉이 스크린에 서 있는 모습만 봐도 괜스레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으로서의 벤 애플렉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의 연출력 때문입니다. 전작 '아르고'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벤 애플렉은 미국적인 할리우드 교과서형 연출을 선호하는 듯합니다. 이번 작품인 '에어'도 그렇고요. 이 말인즉슨 그만의 스타일이 돋보이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만큼 안정적으로 관객들을 결말까지 편안하게 안내하는 영화를 만든다는 말이 됩니다. '에어' 역시 그러한 점에서 상당히 만족한 작품이었습니다.

 

어떠한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과정이란 다리는 필수로 건너야만 하는 과제이죠. 그러므로 완벽한 결과를 마주한다는 것은, 곧 누군가의 인생이 담긴 노력의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러한 인생을 살아온 자들입니다. 1984년 당시, 컨버스와 아디다스에 밀려 농구화 업계 꼴찌를 달리고 있던 나이키의 직원들이 어떠한 노력의 과정을 통해 마이클 조던을 영입하고 '에어 조던'이라는 전설을 써 내려갔는지 영화는 모범적인 연출로 비추어냅니다. 이 영화의 강점은 모범적인 연출도 있지만, 무엇보다 맷 데이먼의 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맷 데이먼만큼 할리우드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는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던 벤 애플렉도 좋지만, 맷 데이먼이 스크린에 서 있을 때가 더욱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모범적인 연출과 모범적인 연기가 만나서 합을 이룬 모범적인 할리우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점: ★★★

 

 

 

3. 존 윅 4

이제는 최고의 액션 프랜차이즈물이 되어버린, 존 윅 시리즈의 4번째 작품입니다. 저는 흔히 말하는 무지성으로 시청각적 쾌감에만 집중하는 무식한 영화는 싫어합니다. 그런 영화들은 결국 극장 밖을 나오는 순간, 영화에 대한 모든 기억들이 휘발되기 때문입니다. 남는게 없다는 뜻이죠. 존 윅 시리즈 역시 스토리는 개나 준 채, 오직 액션에서 나오는 쾌감에만 집중한 영화죠. 하지만 존 윅 시리즈는 여타 무식한 액션 영화들과는 다릅니다. 존 윅 시리즈는 그러니까, 영화의 다른 요소들을 헐겁게 다뤄도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노선을 확실히 정하고 그 노선만 죽도록 판다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진리를 여실히 증명한 작품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이번 시리즈도 전체적으로 볼만했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요.

 

일단 '존 윅 4'의 러닝타임은 평균 액션 영화의 러닝타임을 훨씬 넘는 2시간 49분입니다. 액션 영화의 러닝타임이 비교적 짧은 이유는, 지속되는 시청각적 자극에서 오는 쾌감만으로는 긴 시간을 커버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2시간 49분 중 대부분의 시퀀스들에서 지루함보다는 쾌감이 돋보이는 연출들이 더 많이 등장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후반부에 등장하는 버드 아이 뷰를 이용한 액션씬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액션 차력만으로는 긴 시간을 모두 커버할 수 없다는 한계가 보였다는 점입니다. 앞서 언급한 듯이 지루함보다는 재미를 더 많이 느끼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지루함이 완전히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액션에 사활은 건 작품이니만큼, 스토리 진행 시퀀스는 매우 별로더군요. 그리고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222계단에서 구르는 씬 등 실소가 나오는 연출은 폼이 전부인 이 영화에 어울리는 연출일지 의문이 들더군요. 그래도 단점만큼 장점 또한 돋보인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평점: ★★★

 

 

 

4. 물안에서

홍상수 감독의 신작이죠. 홍상수 감독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1년에 영화를 두 편씩 공장처럼 찍어내는 것도 신기하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다작을 함에도 불구하고 걸작들만 뽑아낸다는 것이 제일 신기하죠. 그러나 전체적으로 수작 내지 걸작의 평가를 받던 그동안의 홍상수 감독 작품들에 비해, 이번 작품인 '물안에서'는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분위기에 동조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영화 전체를 아웃포커스로 찍었다는 점 때문이겠죠. 솔직히 저도 처음에 그러한 사실을 듣고 예고편을 접했을 때는,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갈수록 미니멀리즘해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영화 전체를 아웃포커스로 찍는 경지까지 도달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는 예전부터 꾸준히 홍상수 감독을 지지해온 관객 중 한 명이기에, 큰 기대를 안고 영화관에 갔습니다. 그리고 '물안에서'는 놀랍게도 제 기대 이상을 충족시켜준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여타 작품들과는 다르게, 청춘들이 극의 중심이 됩니다. 지금까지 중년 남녀들을 주로 다루던 그의 작품들과는 달리, 청춘들이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감독의 전작 중 하나인 '인트로덕션'이 생각나더군요. 영화는 세 명의 청춘들의 삶의 고뇌를 다룹니다. 무언가를 이루는 예술가가 되고 싶지만, 자신의 열정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잔인한 현실과 그러한 현실 앞에서 길을 잃어버린 청춘들이 스크린에 계속해서 비추어집니다. 아웃포커스는 청춘들이 마치 초점이 나간 앵글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미래로 향해 나아가는 영화라는 것을 전재하는 의도적 연출로 느껴집니다. 영화의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조언을 하거나 책임 없는 희망을 읊조리는 꼰대 같은 영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영화는 그저 삶을 살아가면서 그들이 스스로 깨닫기를 바랄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이러한 영화의 강단 있는 태도를 보면서, 다시 한번 홍상수라는 감독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점: ★★★

 

 

 

5. 라이스보이 슬립스

'미나리' 이후 오랜만에 한국인 이민 가족에 대한 영화가 나왔네요. 이 영화는 캐나다로 이민을 간 한국인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사실 이 영화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다른 영화와 스케줄이 겹쳐 포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에는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고 예매를 했다 취소했었는데, 한국에서 정식으로 개봉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시놉시스를 찾아서 읽어봤습니다. 시놉시스와 다른 관객들의 평을 대충 훑어보았을 때는 적당히 볼만한 휴머니즘 영화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영화를 접해보니 의외로 연출적인 측면에서 강점이 보이는 영화였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작품이니만큼, 그만큼 얻은 것도 많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속 아들은 매우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단 둘이 캐나다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되는데, 동양인이고 점심으로 김밥을 싸왔다는 이유로 '라이스보이'라는 인종차별적 별명을 들으면서 자라게 됩니다. 아무리 어머니가 진심 어린 모성애로 키웠을지라도, 타국이라는 이질감과 삶에 자연스레 내제되어 있는 인종차별적인 시선들은 그들의 삶을 끝내 평범히 흘러가게 놔두지 않습니다. 현재의 몸은 다른 나라에 있을지라도, 평생을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해야 할 장소는 결국 외피 이상의 내면적 지주가 묻혀있는 고국입니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한 듯이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은 모자(母子) 사이의 공허함은 비로소 고국인 한국으로 돌아가서야 채워집니다. 이러한 영화의 스토리텔링도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롱 숏으로 시작하여 클로즈업으로 끝나는 롱테이크를 통해 인물들의 감정을 서서히 고조시키며 깊은 여운을 남기는 연출 또한 좋게 느껴집니다.

 

평점: ★★

 

 

 

6. 오디션

가장 보편적인 미이케 다케시 감독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 바로 이 '오디션'이라는 작품이죠. 전 사실 미이케 다케시 감독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총 3편의 작품을 봤는데, '신이 말하는 대로'와 '악의교전'은 고어틱한 연출에서 오는 순간의 쾌감에만 집중한 B급 영화였고 '퍼스트 러브'도 그다지 인상 깊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이케 다케시 감독은 워낙 괴상하고 이상한 영화들을 많이 만드는 다작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기에, 보통 그의 대표작으로 자주 거론되는 '오디션'과 '비지터 Q' 또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오디션'이 국내에 정식으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딱히 끌리진 않지만 어차피 언젠간 볼 거 이왕이면 영화관에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예매를 했습니다. 그렇게 접한 '오디션'은 저의 편견을 아득히 뛰어넘는 충격적인 수작이었습니다.

 

영화는 여성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하는 삶의 동반자가 아닌, 외로움을 달래주는 순간의 희석제이자 성욕의 분출구로써 대하는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남성들에게 일종의 영화적 천벌을 내리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매우 흥미로운 미스터리 스릴러로 채워 넣어 장르적 재미 또한 충족시켜줍니다. 또한 마지막 10분 정도 남짓한 시퀀스는 시각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매우 충격적인 결말을 선사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찾기 위해 시작한 오디션이었지만, 역으로 여성의 공허함을 채워 줄 남성으로 간택당했다는 점에서 통속적인 사회적 지위의 역전(逆轉)을 의미합니다. 2000년 당시에는 마지막 10분 시퀀스의 잔혹함 때문에 국내에서 개봉 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2023년인 지금의 기점에서 본다면 기절할 정도로 잔인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잔인하기는 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뀐 만큼, '오디션'과 같이 여러 이유로 인하여 국내에 개봉하지 못한 작품들이 하나씩 극장에 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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