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장에서 본 것들

2023. 3. 28. 15:43짧은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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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영화인들에게 있어 참으로 바쁜 나날들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주마다 계속되는 기대를 모으던 상업, 예술영화들의 개봉과 아카데미 시상식의 개최로 인하여 진행되는 아카데미 기획전 등 다양한 영화들이 즐비되어 있기 때문이죠. 덕분에 매주 일이 끝나고 저녁에 시간을 내서 힘든 몸을 이끌고 영화관을 방문하지만, 보고 싶은 영화들을 보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기보다는 기쁜 마음이 더욱 크게 다가오네요. 그럼 제가 최근 몇 주 동안 극장에서 관람하였던 작품들에 대해 간단한 단평을 남기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1. 스즈메의 문단속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입니다. 사실 저는 모두가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 열광할 때, 그러한 열광에 의아함을 고수하던 입장이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대표작인 '너의 이름은' 그리고 '날씨의 아이' 두 편밖에 보지 못하였지만, 이 두 작품을 다 보고 나니 더 이상 그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지지 않았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끔찍한 사건이자 모든 일본인들의 트라우마인 참사를 주제로 따뜻한 위로를 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알겠지만, 결국 영화의 끝에 남는 것은 예쁜 작화와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오그라듦밖에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신작인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전작들의 단점을 그대로 답습한 지점들이 보이는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전작들보다 나아진 점이 있다면, 바로 각본의 절제였습니다. 전작들에서 느껴졌던 불쾌한 몇몇 요소들과 주제의식에 비해 과하게 벌려놓은 후반부로 인한 막장 전개가 확실히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영화가 진행될수록 관객들에게 소위 말하는 '뽕'이 차는 지점을 보여주기 위한 과한 후반부의 전개와 주인공의 성장을 위해 편의적으로 배치된 몇몇 작위적 요소들은 여전히 거슬렸습니다. 그래도 전작들에 비해서, 특히 '날씨의 아이'에 비해서 많이 절제하였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감상을 남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평점: ★★★

 

 

 

2. 똑똑똑

저는 사실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반전 영화의 대가라는 명예를 안겨준 '식스 센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똑똑똑'을 제외한 가장 최근작인 '올드'도 저에게는 불호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올드'와 같은 경우는, 흥미로운 주제로 극을 시작하지만 감독의 명성과 번뜩이는 주제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독립영화적 연출이 계속해서 감상을 방해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신작인 '똑똑똑'에서는 감독 특유의 독립영화적 연출에 이질감이 들지 않는 각본을 들고 극을 흥미롭게 변주할 줄 아는 영리한 영화였습니다. 

 

공간이 변하지 않고 한 별장 안에서만 진행되는 작품인만큼 각본과 연기가 중요한 영화인데, 데이브 바티스타는 탁월한 연기를 통해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이젠 데이브 바티스타는 어딜 가서든 당당하게 직업을 영화배우라고 소개해도 될 것 같습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그리고 믿음에 대한 질문으로 포문을 열지만, 끝내 가족에 대한 사랑까지 확장되는 주제의식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영화에 계속해서 미스터리적 요소를 적절히 배치하며, 관객들에게 심리싸움을 거는 각본이 매우 영리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일차원적인 카메라 연출과 스토리의 밀도 등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올드'로 밑바닥까지 떨어진 감독에 대한 기대치를 다시 일정 수준 올려놓는 작품이었습니다.

 

평점: ★★★

 

 

 

3. 파벨만스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이 시대 최고 거장의 신작, 영화에 대한 영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 이 세 가지 이유만으로도 이 영화를 기대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는 '우주전쟁'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그 마음이 잠시 흔들렸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확실히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누군가가 그의 최고작을 물어보면 '우주전쟁'이라고 답했겠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에게 똑같은 질문을 물어본다면 '파벨만스'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영화가 평범한 한 꼬마의 인생에 들어오게 된 순간, 가족과 예술에서의 기로,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감독의 신념을 영화적 황홀함으로 극에 완전하게 녹여냅니다.

 

처음에는 이 영화를 단순히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메타 영화일 것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영화를 다 본 후에는 정말 말 그대로 엄청난 충격에 빠졌습니다. 한 소년이 영화라는 온 인생을 다해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난 순간부터, 삶을 살면서 느낀 수많은 감정들을 이렇게 완벽히 하나의 영화에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할지 몰랐습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어떻게 지금의 자리까지 왔는지,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여 자신의 꿈을 이뤘는지 이 영화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수많은 고뇌의 선택을 통해 지금의 명성을 스스로의 손으로 쟁취한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저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평점: ★★★★☆

 

 

 

4. 샤잠! 신들의 분노

이 영화에 대해선 딱히 글을 쓰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결산을 목표로 작성하는 포스팅인만큼 간단하게라도 써야 될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진짜 재미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실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DC의 히어로 영화에 바라는 기대치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공개한 작품들은 보면, 광팬분들이 아니라면 기대를 할래야 할 수가 없긴 하죠. 그나마 제임스 건 감독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괜찮긴 했다만. 여하튼 딱 예상한 만큼의 퀄리티였습니다.

 

일단 영화가 유치합니다. 물론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방향 자체가 유치함에서 나오는 매력을 필두로 뻗어나가는 작품이지만, 그러한 컨셉을 잡았으면 최소한 준수한 연출로 관객들을 설득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스토리 전개는 뚝뚝 끊기고, 설득하지 못한 채 남발되는 영화의 유치함은 보는 저를 부끄럽게 만들더군요. 극에 등장하는 주조연들은 많지만, 각각의 매력을 하나도 살리지 못합니다. 캐릭터 코미디 영화에서 캐릭터들의 매력을 살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팥 없는 찐빵과 마찬가지죠.

 

평점: ★★

 

 

 

5. 어떤 영웅

 논란이 많은 영화죠.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이 본인의 제자가 쓴 각본을 표절했다는 논란으로 법정까지 갔다는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왕성히 활동하는 감독 중 가장 각본을 잘 쓰는 감독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저는 다섯 손가락 안에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을 뽑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각본 집필 능력이 출중한 감독이 굳이 제자의 각본을 표절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재판의 정확한 결과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만약 유죄로 판결이 난다면 저는 감독에게 많이 실망할 것 같네요. 그래도 이 포스팅은 사회적 사건의 윤리성을 따지는 자리가 아닌 영화 이야기만을 목적으로 작성하는 것이므로, 영화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말하고자 합니다.

 

일단 영화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매스컴의 정치적 목적으로 변질되는 진실에 희생당하는 시민과, 자본주의 앞에서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정의로움마저 묵살되는 암울한 현실을 탁월하게 비추어냅니다. 상대방에게 선함을 목적으로 행한 일이지만, 사회는 그러한 선함을 기득권의 이득으로만 이용하려 하니, 더 이상 이 세상에서는 대가를 원하지 않는 정의로운 영웅이란 탄생하지 못할 것이라는 염세적인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진실보단 당장에 누군가를 마음껏 찬양하거나 깎아내릴 수 있는 눈 앞의 가십거리를 찾는 대중들의 일차원적인 줏대 또한 안타깝습니다. 논란과는 별개로 상당히 잘 세공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점: ★★★★

 

 

 

6. 오토라는 남자

2015년에 개봉한 스웨덴의 영화 '오베라는 남자'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한 영화입니다. 원작 또한 무난하게 볼만한 휴먼드라마였기에,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톰 행크스의 연기를 극장에서 본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감상했습니다. 영화는 딱 제 생각만큼의 감흥을 주는 완성도였습니다. 염세주의자이지만 주변인들의 따뜻함을 통해 갱생하는 주인공, 그러한 영화의 따뜻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안전한 전개, 중간중간 위트 있는 코미디 등 전체적으로 무난한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무난함 속에서도 톰 행크스의 탁월한 연기는 숨겨지지 않더군요. 정말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됩니다.

 

원칙주의자는 법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적인 윤리상을 지향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너무 원칙에만 충실하다보면, 낙천주의자들만이 지닌 딱딱한 원칙 밖에서만 얻을 수 있는 삶의 또 다른 행복을 얻을 수는 없겠죠.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서 떠났다고 해서 한순간에 삶의 의미가 휘발되는 것은 아니죠. 가끔씩은 원칙에서 벗어나 정해지지 않은 삶 속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알 수 없는 내일이라는 미래를 즐기고, 떠나간 인연에 대한 괴로움에 낙담하는 삶을 살기보단 행복했던 과거를 추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영화는 말합니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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